평해(平海)의 월송정(越松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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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읍 월송리 바다로 나아가는 길목에는 나지막한 소나무숲 사이에 우뚝 솟은 정자 한 채가 있다. 누대에 올라서면 배경으로 그윽하게 솔숲이 펼쳐지는데, 멀리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풍경이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눈 아래 깔리는 것은 발 밑의 청정한 소나무들이다. 그 솔잎이 바닷바람에 부대끼면서 내는 소리들이 귀를 가득 적신다. 그 너머로 거칠 것 없이 뻗어나가는 바다는 수평선이 따로 없어 그대로 하늘과 맞닿아 있으니, 마치 소나무 구름 위에 둥실 뜬 듯한 기분이 든다. 월송정()은 ‘’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신라의 영랑·술랑·남속·안양 네 화랑이 울창한 소나무 숲에서 달을 즐겨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신라시대의 화랑들( · · ·)이 이 곳의 울창한 송림에서 달을 즐기며 선유()하였다는 정자이다. 관동8경()의 하나로, ‘’이라고도 쓴다. 명승을 찾는 시인 ·묵객들이 하나같이 탄복한 곳이라고 한다. 정자는 고려시대에 이미 월송사() 부근에 창건되었던 것을 조선 중기 연산군 때의 관찰사 박원종()이 중건(혹은, 그가 창건하였다고도 함)하였다고 하며, 오랜 세월에 퇴락한 것을 향인()들이 다시 중건하였으나 한말에 일본군이 철거해버렸다. 1969년에 재일교포들이 정자를 신축하였으나 옛 모습과 같지 않아서 해체하고 1980년 7월에 현재의 정자(정면 5칸, 측면 3칸, 26평)로 복원하였으며, 현판은 최규하()의 휘호로 되어 있다. 관동8경을 꼽을 경우, 월송정 대신 강원 통천군 흡곡(  )에 있는 시중대()를 꼽는 이도 있다.

 

아름다운 풍광이 모든 근심을 씻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닌가보다. 1906년에 영덕에서 의병을 일으킨 평민 의병장 신돌석은 소년 시절에 이곳에 와서 “누대에 오른 나그네 갈 길을 잃고 / 잎이 진 나무로 덮인 강토를 탄식한다 / 남자 나이 열네 살에 무엇을 이루었는가 / 가을 바람 비껴 감개에 젖는다”고 읊었으니,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랬던 곳이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퇴락한 건물은 1933년에 다시 중건되었으나 일제 말기에 미군 폭격기의 목표가 된다 하여 일본 해군이 그나마 아예 헐어버렸다. 1969년에야 그 자리에 건물을 다시 세웠으나 정자라기보다는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전망대식의 현대적인 건물이라 1980년에 헐어버리고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세운 것이다. 좋은 풍광을 누리는 곳에 세워진 까닭에 눈에 잘 띄기도 하지만 그만큼 곡절도 많은 셈이다. 지금도 바로 근처에 군부대가 있어 경계표지들이 있고, 밤에는 송림 너머 바닷가에 나가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 울창한 송림 가까이에는 백사장이 4㎞나 이어진 구산해수욕장이 있으니 월송정에서는 바람을, 구산해수욕장에서는 파도와 물살을 이어 즐길 수 있다.

 

자료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월송정 (답사여행의 길잡이 10 - 경북북부, 초판 1997., 15쇄 2010.,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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