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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읍 월송리 바다로 나아가는 길목에는 나지막한 소나무숲 사이에 우뚝 솟은 정자 한 채가 있다. 누대에 올라서면 배경으로 그윽하게 솔숲이 펼쳐지는데, 멀리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풍경이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눈 아래 깔리는 것은 발 밑의 청정한 소나무들이다. 그 솔잎이 바닷바람에 부대끼면서 내는 소리들이 귀를 가득 적신다. 그 너머로 거칠 것 없이 뻗어나가는 바다는 수평선이 따로 없어 그대로 하늘과 맞닿아 있으니, 마치 소나무 구름 위에 둥실 뜬 듯한 기분이 든다. 월송정(越松亭)은 ‘月松亭’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신라의 영랑·술랑·남속·안양 네 화랑이 울창한 소나무 숲에서 달을 즐겨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신라시대의 화랑들(永 ·述 ·南石 ·安祥)이 이 곳의 울창한 송림에서 달을 즐기며 선유(仙遊)하..
바다 위에 빽빽히 솟아 있는 돌기둥[叢石] 위에 세워 총석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총석 중 바다 가운데 있는 사석주(四石柱)를 특히 사선봉(四仙峰)이라고 하는데, 신라의 술랑(述郞)·영랑(永郞)·안상랑(安詳郞)·남랑(南郞)의 네 선도(仙徒 : 화랑도)가 이곳에서 놀며 경관을 감상하였다는 전설에서 이름하였다고 전한다. 총석들은 현무암이 오랜 세월 비바람과 파도에 부딪혀 그 면들이 갈려져 떨어지면서 6각형·8각형 등 여러 가지 모양의 돌기둥들이 장관을 이룬다. 또한 총석들은 그 생김새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뉘는데, 바다로 향하여 오른쪽에 좌총(坐叢 : 앉은 자세), 왼쪽에 와총(臥叢 : 누운 자세), 그 사이에 입총(立叢 : 선 자세)이 있고, 주위에 묘하게 생긴 바위들과 돌기둥 위의 소나무가 신비로움을 자아..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구조의 정자이다. 고려시대에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 해안가에 처음 세워졌으나 오랜 세월이 흘러 허물어졌으므로 조선시대인 1471년(성종 2) 평해군수 채신보(蔡申保)가 현종산(縣鍾山) 남쪽 기슭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1517년(중종 12) 거센 비바람에 파손된 것을 1518년 중수하였고, 1590년(선조 23) 평해군수 고경조(高敬祖)가 또 중수하였으나 허물어진 채로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1854년(철종 5) 울진현령 신재원(申在元)이 이축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여러 해 동안 재정을 마련하지 못하여 추진하지 못하다가 1858년(철종 9) 울진현령 이희호(李熙虎)가 군승(郡承) 임학영(林鶴英)과 함께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광복의 격변기..
동해를 바라보며 기원의 빛을 보내는 해수 사찰이자 관음사찰로 명성 높은 낙산사는 2005년 고성과 양양 지역을 휩쓴 대화재로 천 년의 기록들이 재로 변하였다. 사찰 경내의 모든 목조건물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 화마의 위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어서 500년 역사의 낙산사 동종을 녹여낼 정도였다. 원통보전과 무설전 등 수많은 사람들의 기원을 담고 마음을 다독이던 장소들이 타오르는 불길 속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모든 사람들의 마음 또한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1,300년 전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의 진신사리를 모셔 만들었다는 사찰은 관동지방의 절경으로 이름난 오봉산 자락에 자리 잡고 푸른 동해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유명하다. 진실한 사람들의 소망과 기원을 받아준다는 관세음보살의 신통함으로 우리나라 최..
보물 제213호. 정면 7칸, 측면 2칸, 팔작지붕. 삼척시의 서편을 흐르는 오십천(五十川)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자리잡고 있다. 창건 연대와 창건자는 알 수 없으나 《동안거사집》에 1266년(고려 원종 7)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후와 같이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1403년(조선 태종 3)에 삼척 부사(府使) 김효손(金孝孫)이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원래의 규모는 정면이 5칸이었던 것을 후일 양쪽 끝에 1칸씩을 늘린 것으로 보이며, 그 부분은 공포(栱包)의 형식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내부의 천장을 보면 당초 건물의 측면 외부에 나와 있던 도리의 뺄목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이 누각이 원래는 맞배지붕 건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공포는 주두(柱頭)..
현재는 휴전선 이북에 있다. 삼일포에는 장군대와 봉래대, 연화대, 금강문, 몽천, 와우도, 단서암, 무선대, 사선정토, 매향비 등 명소들이 있다. 볼거리가 많고 아름다운 삼일포는 남북방향으로 긴타원 모양이며, 휴양관광지로 가꾸어져 있고 천연기념물 제218호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 팔도에 다 호수가 있는 것은 아니나, 오직 영동에 있는 이 여섯 호수는 거의 인간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닌 듯싶다. 한편 삼일포의 호수 복판에는 사선정(四仙亭)이 있는데, 곧 신라 때 영랑ㆍ술랑ㆍ남석랑ㆍ안상랑이 놀던 곳이다. 네 사람은 벗이 되어 벼슬도 하지 않고 산수를 벗하며 놀았다. 세상에서는 그들이 도를 깨우쳐 신선이 되었다고 하였다. 호수 남쪽 석벽에 있는 붉은 글씨는 곧 네 선인이 이름을 적은 것인데, 붉은 흔적이 벽에 스..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지방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6칸, 측면 5칸, 기둥 32주(柱)의 팔작지붕 겹처마기와집의 누대(樓臺)로, 강릉 오죽헌(烏竹軒)에 있던 율곡(栗谷)이 10세 때에 지었다고 하는 《경포대부(鏡浦臺賦)》를 판각(板刻)하여 걸었다. 또한 숙종의 어제시(御製詩)를 비롯하여 여러 명사들의 기문(記文) ·시판(詩板)이 걸려 있다. 특히 누대의 전자액(篆字額)은 유한지(兪漢芝), 정자액(正字額)은 이익회(李翊會), 제일강산(第一江山)은 주지번(朱之蕃)의 글씨라고 하는데, ‘江山’ 두 자를 잃어버려 후세인이 써 넣었다고 한다. 1326년(충숙왕 13)에 관동존무사(關東存撫使) 박숙정(朴淑貞)이 현 방해정(放海亭) 북쪽에 세웠으며, 1508년(중종 3)에 부사(府使) 한급(韓汲..
고성군 남쪽 동해안에 자리 잡은 청간정(淸澗亭)은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손꼽혀왔다. 북녘땅에 있는 고성 삼일포와 통천 총석정을 제외한다면 남한땅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관동팔경이다. 속초에서부터 7번 국도를 타고 오르면, 청초호와 영랑호를 지나 북으로 계속 이어지는 동해안의 시원함에 취하다 한눈을 팔 때쯤 나타난다. 12개의 돌기둥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정을 받치고 있는 모습인데, 누정에 올라서면 탁 트인 동해의 맑고 푸른 물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합수머리를 목격하게 된다. 눈을 들어 멀리 서남쪽을 보면 설악산의 울산바위가 보이고, 해안선 쪽으로는 거침없는 동적인 맛이 흐르는 반면, 대나무와 소나무 숲 속에 자리 잡은 누정은 정적인 분위기를 풍겨 서로 대비를 이룬..